2007년 7월 4일 수요일
[스크랩] 돈이 뭐냐?
어르신: 돈이 뭐라고 생각하냐?
금나라: 잘은 모르겠지만,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르신: 인생?
금나라: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에 따라 인생을 어떻게 살았냐라는 거죠. 돈을 개처럼 벌었으면 개 같은 인생을 산거고, 돈을 땀을 흘려 벌었으며, 땀흘리는 인생을 살은 거고. 돈을 공짜로 벌었으면, 인생을 거저 살은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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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섭 생각
참. 나도
TV 드라마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니.
작가의 의도에 그대로 넘어간 모양이다.
허긴, 나란 놈도 셀러리맨 8개월을 지내면서 돈에 대한 참 많은 생각을 했었으니.
서울 집 값, 재태크, 펀드, 주식, 대박, 창업..
자본 주의 사회를 살면서 돈 보다 과연 사람이 중요한가?
사람의 인생이 돈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말이다.
에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1993년 6월 23일, 케임브리지에서 정수론의 최대 난제 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기까지.
증명을 한 사람은 영국 출신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였다.
그는 20세기의 수학을 총망라해서 17세기에 여백이 없어 증명하지 않았던 문제를 풀었다. 페르마는 분명 와일즈의 방법으로 증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17세기에 페르마가 풀었던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수학자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후배들에게 추천할까하는데,
수학 관련 책이라 어렵지 않을까 하는 후배들이 있을까봐 내 이야기를 좀 할까한다.
처음 책을 읽으려고 시작할때, 나는 머리를 비우자고 다짐했었다.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물론 이 책은 수학책이 아니다. 절대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풀렸다니까..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을것 같아서,
그리고 페르마의 정리에 관련된 350년간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궁금했기 때문에
읽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한줄 한줄 읽으면서 상당히 낯익은 이름들이 보였다.
유클리드, 오일러, 튜링, 에니그마, 갈루아 등등
내가 코스모스에서 암호 공부하면서, 유교수님에게 수업시간에 들었던 이름들이었다.
바로, 우리가 한번씩은 거치는 고전 암호, DES/AES, RSA/ECC 세미나를 통해서도 한번씩은 언급되던 인물들이다. 낯익어서 인지 책의 내용은 더 잘 들어왔고, 내가 동아리에서 뭔가 배워가지고 나오긴 했구나.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면 정수론, 그 안의 암호 이론에 대해서 조금은 주변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다. 그 수학자가 누구며, 암호 말고 더 많은 업적은 무엇이며 등등
무거운 암호 세미나만 할께 아니라 이런 가벼운(?) 책을 읽어 줌으로써 머리를 식혀 봄이 좀 어떨지...^^
저자 : 사이먼싱
역자 : 박병철
출판사 : 영림카디널(주)
분 야 : 자연과학 > 과학일반 > 자연교양물
출판년월 : 1998년 05월 15일
ISBN-10 : 8985055976
ISBN-13 : 9788985055970
면수 : 399쪽
2007년 7월 3일 화요일
General Guidelines
-Guidelines for FSM synthesis
The following guidelines are presented for writing finite state machines that may help in optimizing the logic:
a) State names should be described using "enumerated types" in VHDL, or "parameters" in Verilog.
b) Combinational logic for computing the next state should be in its own process or always, separate from the state registers.
c) Implement the next-state combinational logic with a case statement.
-Latches
are simple devices, therefore they cover less area as compared to their counterparts, flip-flops. However, latches in general are more troublesome because their presence in a design makes DFT scan insertion difficult, although not impossible. It is also complicated to perform static timing analysis on designs containing latches, due to thier ability of being transparent when enabled. For this reason, designers generally prefer filp-flops to latchs.
-Three-State Interface
Tri-state logic is inferred when high impedance (Z) is assigned to an output. Arbitrary use of tri-state logic is generally not recommended because of the following reasons:
a) Tri-state logic reduces testability.
b) Tri-state logic is difficult to optimize - since it cannot be buffered. This can lead to max_fanout violations and heavily loaded nets.
On the upside however, tri-state logic can provide significant savings in area.
from Himanshu Bhatnagar, "Advanced ASIC chip synthesis," 2002
2007년 6월 29일 금요일
2007 국제 보안 기기 및 정보보호전 관람후기
대학교/대학원 다니면서 정보보호에 관한 연구만 전념해 왔던 나. 세분화해서 이야기하면 암호 회로 설계에 빠져 있었다. 당시 난 그 분야에 정보보호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표되는 논문들마다 그 중요성을 크게 부각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참관하고 나서 느낀점은 정말 암호학/암호 회로는 보안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요성은 크다. 하지만 그 중요성도 communication/network 이나 storage bussiness에서 큰것이지, 사용하지 않는 분야가 더욱 크다. 더욱이 communication/network/storage 분야에서도 각각 사업이 설치된 후에 정보보호의 필요성때문에 암호 회로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비관하자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저렇기 때문에 오히려 암호 회로를 설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정확히 암호를 이해하고 설계하는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고, 사업성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잠깐의 두서없는 넋두리는 마치고. 이번 참관에서 느낀것은 보안 시장에 엑세스 컨트롤과 영상 저장 장치, 스토리지 비지니스의 비중에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현실을 좀 알게 된거지.
몇 장의 사진을 준비 했다, 하나 하나 짧은 글과 함께.
후배 정관이가 하려 했던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차량용 블랙박스. 일반적으로 카메라와 위치 추적 장치(GPS), 각종 센서을 가지고 있어 저장 장치에 주기적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앞으로 법적으로 모든 차량에 블랙 박스 장착이 의무화가 된다면 대박을 맞을 회사이다. 주식 사놔야 하나..ㅋ
뭐를 전시한것 일까? 바로 보호 필름이다. 즉 이걸 사용하면 방탄 유리가 되는것이다. 시연보이는데 바로 앞에서 헤머로 유리 박살내는데, 꿈쩍하지 않았다. 좋은 제품이 될듯..
놀랐다. 엄청난 크기에... 크기에 비해 상당히 유연한 움직임에.. 사물을 추적할 수 있는 카메라 인것 같다. 상당한 속로로 사물을 쫓아 카메라 시선을 이동 시킬 수 있다.
무인 정찰기.
쉽게 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성능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무선으로 영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쟁 업체.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가 전략을 펴고 있다.
DVR이라는 영역이 대기업에서 하기에는 사업성이 크지 않아서
아직은 우리 같은 벤처에게는 좋은 상황이다. 두 회사 꾸준히 함께 성장 했으면 한다.
DVR 전면에 아무런 버튼이 없는 제품을 유심히 보고 있는 CS팀 동료분. 오로지 remote controller만으로 동작한다. 옆에 있는 아구스 직원분의 말을 빌리면, 실제 user들로부터 feedback받은 결과 전면 버튼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없애버렸다고..
전시장에서 만난 직장동료.
요즘 내 어색한 웃음을 따라하는 재미에 나만 보면 따라 웃으신다. 내가 저렇게 웃나 싶기도 하고..쩝.
아. 그리고 저 뒤에 기숙사 방짝도 보이네요..
2007년 6월 27일 수요일
헌법의 풍경
오늘도 야근이 한창이다.
하루 하루 모든 사람이 열심히 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후에 큰 대가가 올꺼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나 역시 그런 대박의 꿈을 가지고 벤처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열심히 사는 것과 큰 대가 이야기를 한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책 '헌법의 풍경'에 나오는 법률가들에게는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줄곧 1등을 놓치지 않기위해 노력하고, 대학교 법학과에서 고시원에서 법전을 외워가며 고시 패스하려고 코피 흘렸던 사람들이 법률가이다. 타고난 머리가 좋은것도 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것은 사실이다. '고시만 패스하면 모든게 달라진다', '고시만 패스하면 고생끝이다'라는 한줄기 작은 불빛만을 바라보면 하루 하루 법전에 머리를 파묻는 사람들도 법률가들이다. 그리고 패스하면 인생은 180도 바뀌어 버린다. 수년간 고시 실패하면서 자신을 내려보던 사람들, 가족들이 패스 후에는 올려다보면서 존경의 눈빛과 찬사들을 보낸다. 고시 패스 후 이들은 사람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엄청난 권한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이 머리속에 쌓여가게 된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좀 정리해봤다. '헌법의 풍경'에서는 최고 지식인 계층인 법률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이 법전에 적혀 있는데로 일을 하지 못하고, 괴물이 되어 버린 국가의 수족역할을 하거나 인권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읽다보면 법률가들을 비판하는 내용에는 속 시원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손에 주먹이 쥐도록 만드는 부분도 있다. 헌법의 울타리 안에서 국가가 괴물이되서 보호해야할 국민을 억압하고, 그 손발이 법을 수호하는 법률가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식했던 우리들.
이 책을 모두들 읽어 봤으면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법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으면 한다. 아니 법 관련이 아니라도 좋다. 많은 책을 읽어 많은 지식을 쌓았으면 한다. 지식인들이 더이상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들지 않도록 그 만큼 똑똑해 지자.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역 교양인 2004.06.01 312p ISBN : 8995530006
작가 소개
저자 김두식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과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지냈다.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아내를 뒷바라지 하겠다며 검사직을 사임함으로써 전형적인 법조인의 길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그는 이후 2년 간을 딸 아이 양육, 식사 준비, 청소, 빨래, 비디오 관람 등 가사 업무에 종사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겠다던 야심 찬 출발과는 달리 ‘등처가’로 전락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진로를 수정하여 코넬대 법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지금은 한동대 법학부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사회보장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2002년「칼을 쳐서 보습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를 출간하였고,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 장애인, 여성, 병역 거부자 등 소수자 문제를 다룬 따뜻한 글들을 발표해왔다. [북토피아 제공]
[스크랩] 제7회 한국회계학회 투명회계대상 수상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기업, 아이디스는 6월 20일(수) 제7회 한국회계학회 투명회계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상은 한국회계학회가 기업의 투명한 회계관행을 정착시키고, 경영자의 투명회계의지를 격려하여 투명사회를 열어가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제정하였습니다.
회계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기업지배구조 및 내부통제운영의 투명성, 조세행정의 투명성, 사회적 책임 이행 정도, 재무구조의 안정성과 수익성 등을 선정 기준으로 하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여되는 공신력 있고 권위 있는 상입니다.
아이디스는 창립 이후부터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목표아래 DVR 개발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으며 그 결과 DVR분야에서 세계 3대 메이저 업체로 성장하였습니다.
매년 25% 이상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창립 이래 지속되어 온 무차입경영을 기반으로 훌륭한 재무안정성(부채비율 7.4%, 2006년 말 기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과 이사회 구성원의 1/4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함으로써 투명한 의사결정 및 회계처리 등을 통한 투명경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있습니다.
투명한 내부통제 및 회계투명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2001년부터 ‘내부회계관리규정’을 제정, 준수해 왔으며 2006년에는 이를 전산으로 구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여 CEO/CFO 인증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4년 ERP와 전자결제시스템을 도입하여 업무의 효율성 및 효과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권한과 책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자율 경영 중심의 프로세스를 정립하였습니다.
아이디스는 ‘기업시민’으로서 회사의 책임과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2006년을 ‘사회공헌 원년의 해’로 정하고 전 임직원이 직장모금운동인 ‘한사랑벤처릴레이’에 참여하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하여 학교, 어린이집, 복지시설등에 CCTV설치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아이디스는 이러한 제반 노력의 결과 과거 외부감사법인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적정의견을 받아 왔으며, 성실 납세의무 이행이 인정되어 2003년 재경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금번 투명회계대상의 수상을 계기로 아이디스는 투명한 기업문화의 정착 및 확산을 위한 선도기업으로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합니다.
2007년 6월 25일 월요일
[SEK2007] 관람기
하지만, 2007 SEK 사전 등록 실패로 인해서 초대권 들고 가야 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2006 SEK에 사전 등록 했다는 사실을... ㅠ
지난번 전시에회 본 적이 있던 괴물.
그 크기에 놀라서 사람들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넋을 놓았다.
102인치..
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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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야 겠다.
기숙사에 책상이 없다보니
책 보기가 여간 불편하다.
그래서 좌식 책상이나, 의자가 눈에 많이 들어오는데
이번 전시장에서 괜찮은 모양의 의자가 있어서
사진 한방!!!!
목받이가 없어서 실용성 Zero!!
Pass..
드디어 공개된 삼성 블랙잭폰, 미국의 인기를 뒤에 엎고 국내 출시를 앞두고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제품 답게 구경 하기 위해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직접 손에 들고 이것 저것 만져보면서 느낌은 약간은 느린 성능에 실망을 했지만, 스마트폰 다운 여러 기능에 만족했다. 하지만 어제 정재근이 이야기한것이 맘에 걸린다. "그거 가지고 뭐할라구?"
미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블랙잭폰의 국내판. SCH-M620(SKT, 위 사진), SPH-M6200(KTF, 아래 사진) 블룩투스, 와이파이, MP3, 카메라 등 많은 기능을 가진 PDA Phone 현재 지름신께서 내려와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제품!! 나의 헨드폰 교환 주기와 이 녀석 출시 시기가 비슷한지라.. 디지털 피아노냐.. 이 녀석이냐...
행사 이벤트 중에서 블랙잭폰으로 메일을 보내면, 블루투스 헤드셋을 준다해서.
ㅋㅋㅋ
자기 제품 산다는거
최고의 사용하기 아니냐..
바로 2메일을 날렸다.
전시장 내에서 본 것 중 탐났던 제품.
삼성의 디지털 액자 선명한 해상도, 고용량, 다양한 이미지 변환 기능 등
가격만 착하다면 기숙사 벽에 좀 걸어두고 싶다.
아.. 근데 이거 밧데리 수명이??? 쩝 물어볼껄..
KT Wibro 체험장.
국내 Wibro 선두자다운 KT의 전시 부스안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었다.
고속 이동중 무선 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를 가만히 앉아서 체험하다니..쩝. 할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방법이 없지 않은가. 나중에 상용 서비스하면 직접 차에 달아서 사용하기 전에는 그 성능을 알 수는 없다.
행사 중에 정말 다양한 카메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부스가 있었다. 디카 회사 일까? 아니다. 아릿다운 모델을 대거 투입한 iLuv라는 제품을 출시한 어느 회사의 부스 앞이였다. 물론 나도 몇 장 찍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시기를..
혼자 구경해야 할뻔 나를 구해준 오과장님. 멋진 컷으로 고마움을 대신합니다.
2007년 6월 22일 금요일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SEK2007] 삼성, '슬림 HSDPA 스마트폰' 최초공개
펀드 시작
목돈을 모아서 시작하려는 처음의 다짐데로
세가지 펀드에 분할 투자했다.
농협CA 마켓리더주식 1호
분류 투자신탁 > 주식형
가입대상 개인
특징 투자신탁 설정일로부터 매 1년 동안 펀드의 주식등에의 투자비율이 평균 60%이상 유지
미래에셋3억만들기 솔로몬주식1호
분류 투자신탁 > 주식형
가입대상 개인, 법인 제한없음
특징 우량주에 투자 업종지배력 강화 종목에 가치투자신탁기간이 1년이상일 경우 이익금 비과세 혜택(단, '05.12.31까지의 이익금에 대하여 비과세 적용(원금기준 8,000만원 한도))
맥쿼리IMM글로벌리츠재간접 클래스 A
분류 투자신탁 > 재간접형
가입대상 제한없음
특징 전세계 오피스, 쇼핑몰, 아울렛, 공장 및 산업시설, 호텔, 병원,임대주택등 에 투자, 주식 및 채권과의 낮은 상관관계로 포트폴리오 분산투자
목표는 3년 유지, 수익률 30% 입니다.
모두 선전해주시기 바랍니다.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버튼 콘트롤 캡션 바꾸기
모든 윈도우의 컨트롤들은 하나의 작은 윈도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해당
콘트롤들의 윈도우 객체를 확보하셔서 SetWindowText() 함수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버튼 컨트롤 ID 가 IDC_MYBTN 라고 가정한다면,
pWnd = GetDlgItem(IDC_MYBTN);
if(pWnd)
{
pWnd->SetWindowText("test button");
}
이렇게 GetDlgItem() 함수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고, 또 한가지는 Dialog 기반 이니
Class Wizard 에서 버튼 컨트롤 멤버를 CButton m_MyBtn; 이라고 만들었을 경우
m_MyBtn.SetWindowText("test button");
와 같이 사용을 하셔도 됩니다.
[스크랩] 목숨 걸고 일한다.
3학년때인가, 영준이형이 나한테 장인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장인, 쟁이가 되고 싶다고...
장인(쟁이)는 한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를 이야기한다.
비록 우리는 실험실에서 납땜이나 하는 엔지니어(공돌이)이지만,
장인이 정신으로 살고 싶다고..
오카노씨의 인생을 담은 이 책을 읽다
영준이형이 이야기 했던 그 장인의 삶을 이해 할 수 있었다.
P.S. 이상직, 책 읽다가 이 책 너한테 꼭 필요할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꼭 읽어 봐라.
2007-06-19
박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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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일본인들이 가장 닮고 싶은 초일류 장인
그는 첨단 기계를 무색케 하는 인간이다 - 타임 2000.5
불황에 대한 두려움을 깨끗이 씻어준 경영자! - NHK<금주의 주역> 2003.1
2003년, 일본 초거대 서점들을 석권하며, 전 일본 열도를 강타한 진한 감동의 초베스트셀러! 아마존, 키노쿠니아,야에스북센터,야후저팬 베스트셀러! 지금 일본은 장인 오카노 마사유키의 삶을 보며 '설익은 성공, 얼치기 부자놀음'에 넋을 뺐던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에 나이는 70에 접어들었고, 아는 것은 프레스와 금형뿐이다. 하지만 매스컴은 불가능을 모르는 금형과 프레스의 마술사 불황에 대한 두려움을 깨끗이 씻어준 경영자 라고 격찬한다. 2003년 발간 즉시 일본 amazon 등 일본 전국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 인기를 반영하듯 본서를 읽은 독자들은 서평란마다 대기업이 아니라 당신이 일본의 희망입니다! 이라고 주저 없이 글을 올렸다. 왜일까? 10년 불황이 닥치기 전만 해도 '괴짜' '정신병자' 소리를 듣던 게 그의 인생이었는데 말이다. 실제로 그는 언제나 남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다른 중소기업들이 그저 대기업 하청만 할 때 그는 죽도록 일하며 신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남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몰릴 때 자기 밥값 빼고 남은 돈 전부를 회사에 투자했다. 남들이 하청업체의 등을 치고 근로자 자르기에 급급할 때 불가능하다는 기술을 개발하여 비싼 값을 받았다. 남들이 하와이나 유럽으로 놀러 갈 때, 그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성실한 모습을 견학하러 다녔다. 이제 사람들은 그의 길이 옳았다고 말한다! 오카노 마사유키의 성공은 수많은 일본 기업들과 일본 사람들의 실패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또한 오카노의 성공 모델 속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으로 인해 지레 겁을 먹고 위축되고 있는 우리 한국 제조 업체들은 새로운 성공의 가능성을 배울 수도 있다. [인터파크 제공]
작가 소개
저자 오카노 마사유키
저자 - 오카노 마사유키(岡野雅行)겨우 종업원 6명을 가진 동네 공업소 수준이면서 연간 6억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초일류 장인. 1945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업을 그만두고 기업을 도우면서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972년, 아버지로부터 사장자리를 빼앗는 ‘쿠데타’를 일으킨 후, 오카노 공업사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부터 매출이 아닌 수익을, 허세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풍토를 세웠다. 때문에 거품 낀 사장이란 호칭 대신 ‘대표사원’이란 직함을 쓰고 있으며, 변화를 중시하여 피땀 흘려 개발한 노하우도 3년만 지나면 무조건 팔아버린다.“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모토 아래, 창립 이래로 휴대폰, 워크맨, 의료기긱, 전투기, 우주선 등에 들어가는 수많은 기술과 부품을 개발했으며, 휴대폰 소형화에 절대적인 리튬이온전지 케이스를 개발하면서 일본 모바일 혁명의 일등공신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모기의 주둥아리 침과 같이 가늘어서 찔러도 아프지 않은 무통(無痛) 주사바늘을 개발하여 대량생산에 들어가기도 했다. 소니, 히타치 등 일본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서까지 기술적인 난제를 들고 그에게 찾아온다. 80년대 말 이후 미국 국방부 및 NASA의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다. 하룻밤에도 수십 억 원의 재료비를 쏟아부을 만큼 끝장을 보는 근성, 학벌이나 직위보다는 실력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기술 대국 일본에서도 수많은 ‘열성 팬’을 만들어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이지만, 60년 가까이 프레스와 금형을 하면서 그 업계의 세계적인 장인으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초일류 기업의 엔지니어와 명문대 교수들이 정보 교류를 하기 위해 그의 공장을 매일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으며, 그런 그의 명성을 반영하여 NHK나 『타임 TIME』 등에도 그의 관한 기사가 실리고 있으며, 강연 의뢰가 쇄도하고 있다.[엘리트2000 제공]
2007년 6월 18일 월요일
[스크랩] 이적닷컴
요즘 메일이나 쪽지 등으로
<다행이다> 반주나 악보를 '내놓으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대부분 결혼 축가나 프로포즈용으로 쓰시겠다며.
(신랑이 직접 부르겠다는 분들도 꽤.)
원래 오리지날 반주(업계에서는 통상 MR이라고 부르는데요)는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원곡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싶은 깜찍한 마음?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순간에
제 노래를 꼭 쓰고 싶다는 분들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다행이다> 반주를 올릴까합니다.
제가 방송에서 노래할 때 쓰는 바로 그 음원입니다.
혹 주변에 찾으시는 분들께는 적닷민들이 몰래 전해주시구요.
결혼이나 프로포즈와는 아직 거리가 먼 분들은
틀어놓고 노래방 간 셈 치고 부르시구요.
반주만 들으시면 의외로 빈 공간이 많아서
처음엔 박자타기 좀 어려우실 수도 있어요.
시작할 때 원곡에는 없는 한 마디짜리 준비마디가 있으니
그 짧은 순간에 곡의 템포를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고 보니 무슨 노래교실 같아;;)
어쨌든 어린이는 어린이 대로
어른은 어른 대로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결혼을 맞으시는 분들은 진정 행복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도 얼른 만드시구요~ㅎㅎ
그럼...
p. s.
그냥 듣기만 하실 분은
위의 첨부파일 중
File #1의 .mp3 파일 클릭하시면 플레이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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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7일 일요일
[스크랩] 올림푸스「OLYMPUS SP-550UZ」
진섭생각
먼저 이 녀석 구입에 금전적 지원을 해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이 녀석 구입 과정에는 지름신이 오셨었다. 이 녀석 구입 하루 전 어머니께서는 디카 하나 장만하라고 나를 부축였다, 당신께서 돈을 주겠다하시면서. 나는 내가 알아서 사겠다 말하고 서울집으로 돌아왔는데, 다나와에서 이 녀석의 리뷰를 보게 되었다. 지름신이 잠깐 오셨다. 18배 줌이라는 강력한 기능에 빠져 가격이나 알아볼겸 COEX OLYMPUS 대리점에 간것이 화근이었다.
대리점주인: "이 제품은 지금 보상판매를 하면 풀셋으로 45만원에 살수 있다. "
박군: "전 디카 없는데요."
대리점주인: "내가 가지고 있는 디카를 사용해라."
바로 이때, 지름신께서 아주 내려오셨다.
박군: "좀 생각해 볼께요."
대리점주인: "언제 팔릴지 모릅니다. 하나 남았거든요. 연락처 남기면, 만약 팔릴때 연락할께요."
당시 인터넷 최저가가 40만원 후반이 었으니까.
거기에 풀셋으로 하면 더 비쌌다. 이런 젠장할 지름신아...... 나 통장에서 돈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박군: "어머니 디카 살께요. ㅡ.ㅡa"
어머니: "그래 잘 생각했어.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박군: "네...."
어머니: "알았어, 돈 부쳐줄께. ^^ 아들 사랑한다."
박군: '죄송해요.'
[스크랩] iCon
얼마후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고
다시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해서 최고의 운영체제를 만들고
픽사라는 세계최고의 3D 에니메이션 제작 회사를 세우고
애플로 돌아온 후, iTune 을 발표하면서 음반시장의 정상에 섰고
우라나라에서 최초로 개발한 MP3를 UI만 독보이는 iPod로 전세계 70%를 팔았고
이제는 iPhone으로 세상을 놀래킬 준비를 하는...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있는 이 시대의 iCon 스티브 잡스.
이 책을 통해 읽으면 그는 우리와 같은 엔지니어로 보기 어렵다, 빌 게이츠가 그랬듯.
애플 창업시기에 천재 엔지니어 워즈니악이 애플을 제작했지만,
세상은 스티브가 PC를 만들줄 알고 있다.
잘아는 Toy story, Fiding NIMO, Cars, Bugs life 등을 제작한 픽사에서
스티브의 역할은 돈 많은 사장이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들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수 있다.
컴퓨터, 영화, 음악, 통신등..
또, 그 중심에 스티브가 항상 서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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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에디슨보다 엉뚱한, 빌 게이츠보다 창조적인 하이테크 스타
매킨토시는 아이콘 클릭만으로 프로그램을 여는 컴퓨터 혁명을 가져왔다. 픽사의 최초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는 영화 산업을 뒤흔들었다. 디자인과 기능 혁신을 주도한 아이포드(iPod)는 또 한번 세상을 감동시켰다. 1977년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PC)” 애플Ⅱ를 선보였다. “모든 사람에게 컴퓨터를 안겨 주는 것”은 잡스의 꿈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애플Ⅱ를 놓고 이렇게 작은 컴퓨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잡스는 뒤에 대형 컴퓨터가 숨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했다. 애플은 PC 시장을 장악했고, 스물다섯의 잡스는 가장 젊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잡스가 1984년에 내놓은 매킨토시는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컴퓨터 최대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아이콘 클릭만으로 프로그램을 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다! (잡스의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우린 최근까지도 컴퓨터에 도스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장 조사는 하지 않았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 조사를 했느냔 말이다! 천만의 말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혁신이다.” ―스티브 잡스
잡스는 늘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에 시장성 면에서 실패하기도 했다.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이유도 그 점이었다. 잡스가 다시 세운 회사 NeXT의 첫 번째 컴퓨터 큐브도 (플로피 디스크 대신) 아무도 쓰지 않는 광자기 디스크 드라이브(MOD)를 장착하는 등 잡스다운 혁신적인 컴퓨터였지만 언론의 주목만 받았을 뿐 팔리진 않았다. 한편 1996년에 내놓은 아이맥(iMac)에, 잡스는 이번에도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플로피 디스크 대신) CD롬을 장착했다. 그런데 이번엔 잡스가 120퍼센트 옳았다.
오직 혁신으로 시대를 앞당긴 개척자
잡스가 NeXT의 실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순전히 컴퓨터로만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데 매료됐다. 그가 조지 루커스에게서 사들인 픽사(Pixar)는 결국 1995년 최초의 3D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키고, 애니메이션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할리우드 영화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그 누구도 컴퓨터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하던 시절이다. (아직 벤처 투자 열풍이 불기 전이었던) 당시 픽사의 주식 공개 상장은 “잠재 가치를 보는” 새로운 투자 패턴을 낳았고, 잡스를 다시 억만장자로 만들었다. 이후 픽사가 내놓은 '몬스터 주식회사'(2001), '니모를 찾아서'(2003) 등은 계속 할리우드의 불문율을 깨뜨리면서 기록을 냈다. 잡스는 “가장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사”의 주인이 됐다! 컴퓨터 광 잡스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몇 년 만에 거물이 된 것이다.
특히 '인크레더블'은 또 하나의 혁신이었다. 인간은 컴퓨터 그래픽(CG)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모든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괴물이나 동물이었다. 다른 영화사였다면 슈퍼 영웅 가족의 모험담을 만들자는 버드 감독의 제안이 경험 없는 감독의 “객기”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는 항상 혁신만을 추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픽사는 모험을 했고, '인크레더블'은 잡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 줬다.
디자인 혁신으로 기술 혁신을 이끌어낸 꿈꾸는 예술가
잡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디자인이다. 잡스가 이끌어낸 모든 혁신의 중심은 사실 디자인이다. 키가 큰 매킨토시도 당시 대단한 디자인 혁신이었으며,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만든 혁신적인 아이맥도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원했던 잡스의 열망에서 비롯됐다. 2002년 작은 반구형의 새 아이맥 디자인은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아이포드(iPod)는 우아한 디자인과 세련된 심플함으로 인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MP3 시장을 휩쓸었다. 물론 출시 당시 가장 많은 곡을 담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다른 MP3가 아이포드의 손쉬운 사용법을 따라잡지 못한다. 잡스는 무엇보다도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칭 “예술가”이며, 첨단 기술을 가장 손쉽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애플의 정신이다. 아이포드는 이러한 잡스의 감각과 애플의 목표가 잘 결합된 작품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전”과 우주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꿈”이 있다
잡스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잡스는 “너무 어린 데다 경험도 없기 때문에 성취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또 아이디어라는 열정 하나에 이끌렸다. 그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일도 일단 시작했다.” 1976년 허름한 차고 하나 달랑 갖고 있던 잡스는 5년 안에 애플 사를 《포춘》500대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학벌도 “빽”도 없는 잡스는 그 꿈을 이루었다! 1981년 IBM이 PC를 출시했을 때, 잡스는 자신을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으로 여겼다. “만약 IBM이 이긴다면 앞으로 20년은 컴퓨터 암흑시대일 거다. IBM이 시장을 장악하는 순간 더 이상 혁신은 없다!” 한편 잡스는 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냈다. IBM 규모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애플은 IBM이 PC 시장에 경쟁자로 나타난 대에 대해 “IBM을 환영합니다.”라는 뻔뻔스러운 광고를 냈는데, 이 광고 덕분에 애플이라는 작은 회사의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잡스는 독단과 아집, 갖가지 기벽으로도 악명 높지만, 워즈니악을 비롯하여 잡스 곁에서 혹독한 노동을 견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비전에 매혹된 사람들이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꼈지만, 잡스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와 NeXT의 실패를 극복하고 경쟁이 치열한 냉엄한 미국 비즈니스 세계에서 “애플 신화의 창조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비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시대 최대의 혁신을 주도하면서 컴퓨터, 영화, 음악을 장악한 이 시대의 독보적인 아이콘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회사” 애플과 스티브 잡스 신화의 모든 것!
“전 세계 기업들이 스티브 잡스를 본받고 있다.” ―《비즈니스위크》
애플Ⅱ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애플Ⅰ을 산 사람들이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것은 잡스가 항상 고수하던 원칙이다. 알 수 없는 그의 복잡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언제나 “올바른 것”에 대한 판단력은 잃지 않았다. 회사에 손해가 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또한 잡스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 끌어들이는 비상한 수완을 발휘했다. 잡스에게는 또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 잡스의 아이튠 뮤직스토어는 음반 업계의 축복 속에 탄생한 최초의 인터넷 음악 공급 업체다. 잡스는 디지털 음악 공급이 음악의 판매와 배급 방식을 영구히 변화시킬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미래의 맥박을 정확히 짚어냈다!” “디즈니 사장 마이클 아이스너 같은 걸출한 인물들 간의 파워 플레이와 비즈니스 전략의 깊숙한 내부를 들여다본다.” ―《USA 투데이》 'iCon 스티브 잡스'는 잡스라는 오만한 천재 기술 마니아가 추락과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어떻게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거듭나게 되는지 보여 주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이다. 잡스의 사업가 기질과 발명가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추락과 부활은 물론이고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음악 시장까지 장악한 다음, 이제 미니맥(Mini Mac)을 내놓고 빌 게이츠로부터 컴퓨터 왕국을 되찾으려고 준비하는 현재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영은 실리콘 밸리 기사를 전문으로 쓰는 기자로 1983년에 잡스를 처음 만나, 잡스에 대해 두 번째 평전을 쓴 것이며, 윌리엄 사이먼은 애플의 전 사장 길 어밀리오와 함께 애플 관련 책을 저술한 인물이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이나 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애플 내부의 문화와 잡스의 성향 및 걸출한 인물들 간의 파워 플레이를 가장 잘 보여 준다.
매년 50퍼센트씩 오른 애플 주가에는 “잡스 프리미엄”이 있다!
2004년 잡스는 죽음의 선고를 받았지만 췌장암 종류의 1퍼센트에 불과한 섬세포신경내분비종양으로 밝혀졌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잡스는 애플 전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다음과 같은 추신을 덧붙였다. “저는 이 메일을 병원 침상에서 17인치짜리 파워북 컴퓨터와 에어포트 익스프레스(무선표준지원장치)를 사용하여 이메일을 보냅니다.” 잡스의 회복 소식으로 잡시 주춤하던 애플과 픽사 주가는 다시 정상을 회복했다. 빌 게이츠 없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잭 웰치 없는 제너럴일렉트릭보다도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은 상상할 수 없다. 현재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Stay Hungry. Stay Foolish.”(“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는 올해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감동적으로 마친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iCon 스티브 잡스' 역시 독자에게 꿈과 성공에 대한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인터파크 제공]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스크랩]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 1990 년 )
원제 ふしぎの海のナディア
영제 Nadia, Secret of Blue Water
부제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The Secret of Blue Water Fushigi no umi no Nadia
감독 히구치 신지 (樋口真嗣) 안노 히데아키 (庵野秀明)
원작 쥴 베른
각본 오오카와 히사오 (大川久男)
제작 NHK 그룹 탁크 토호 GAINAX
저작권 ⓒ NHK・総合ビジョン
음악 사기스 시로 (鷺巣詩郎)
장르 SF 어드벤쳐
구분 TV-Series
제작년도 1990 년
BA 등급 BA-13 (13세이상)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25 분
언어 일본어
총화수 25 분 X 39 화
작 품 소 개
가이낙스가 처음으로 제작한 TV애니메이션 작품. 고전적 SF의 대표자인 쥴 베른의 「해저 2만리」을 원작으로 삼은 해양 모험극이다.메카닉에는 철저히 업데이트를 가하고, 설정에도 독자적인 해석을 도입함으로써 원작보다도 훨씬 규모가 큰 현대적인 SF 스펙터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노틸러스 호와 네오 아틀란티스의 사투가 7대양을 무대로 펼쳐지며, 마침내는 우주공간으로까지 나아가는 장대한 스케일이다. 19세기의 낭만을, 20세기 시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분방한 가이낙스 분위기 때문에, 완고하기로 유명한 NHK에서 방송될때 애니메이션의 표현 영역 문제로 방송국과 잦은 마찰을 빚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간중간 퀄러티가 현격이 떨어지기도 하는등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으로 인한 폐해가 나타나긴 하지만 작품 전체를 끌고 나가는 스토리의 치밀함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 나디아를 비롯한 노틸러스호 승무원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등이 일관적으로 묘사되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극장판은 1개가 있는데, 1991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명절특집으로 "블루워터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바가 있다. 극장판은 등장인물의 연령대를 높게 설정하였다. 또한 TV판을 총합하여 편집한 버전도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 4월 13일부터 1991년 4월 12일까지 NHK를 통해 방송되었고 1997년, 2002년에 재방영되었다. 한국에서는 MBC를 통해 1992년 10월 22일부터 1993년 4월 8일까지 방송되었고 1995년 12월 18일부터 1996년 3월 20일까지 재방영되었다. 첫 방영 당시에는 SBS에서 방송하고 있던 '피구왕 통키'와 치열한 시청률 1위 대결을 펼칠 정도로 MBC 방영 만화 중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에서는 상당히 많은 에피소드를 방영하지 않아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으나, 이후 무삭제판이 투니버스를 통해 1996년 12월 23일부터 1997년 2월 13일까지 방송되었고 지속적으로 재방영되고 있다. 1998년에는 iTV에서도 방송되었으나 중도종영되었다.
줄 거 리
쟝은 발명을 좋아하는 소년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열릴 비행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삼촌과 함께 여정에 오른다. 파리에 도착한 쟝은 우연히 피부 색깔이 특이한 소녀를 보게 되고, 그녀를 뒤따라가던 쟝은 곧 그녀가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은 그들로부터 나디아를 지키고자 하는데... 둘은 악당울 피해 여기저기로 도망치다 결국 쟝이 직접 만든 비행기를 타고 바다로 도망간다. 그러나 비행기 고장으로 바다에 표류하게 된 둘은 수수께끼의 바다괴물을 쫒고 있다는 미국 군함 '아브라함호'에 타게 된다. 그러나 갑작스런 수수께끼의 괴물에 공격으로 아브라함호는 대파되고 쟝과 나디아는 다시 바다에 표류하게 된다. 그 와중에 쟝과 나디아는 수수께끼의 괴물로 보이는 물체의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지만, 그 정체는 괴물이 아닌 인공적인 잠수함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쟝과 나디아는 그곳에서 에레크트라라는 여자를 만나 그들이 탄 잠수함이 만능 잠수함 노틸러스호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에레크트라는 쟝과 나디아의 대화를 도청하던 도중, 나디아가 네모 선장의 딸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노틸러스호가 가고일의 기지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난 후, 쟝과 나디아는 수상 비행기로 새롭게 개조된 쟝의 비행기를 타고 노틸러스호를 떠나 어떤 섬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섬에 도착할 무렵, 누군가에 의해 비행기의 날개가 격추당해 숲 속으로 추락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정신을 차린 쟝과 나디아는 숲 속에서 일가족으로 보이는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시체들 사이에서 한 여자 아이(마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한편 쟝의 조사로 이 섬이 가고일의 비밀 기지라는 것을 알게 된 일행. 섬의 비밀을 알기 위해 탐색을 하던 도중, 마리는 가고일의 부하에게 납치 당하고 만다. 이 사실을 안 쟝과 나디아는 구출하기 위해 기지 안으로 잠입하지만 블루워터의 반응으로 들킨 나디아는 쟝에게 블루워터를 맡기고 가고일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쟝은 나디아에게 꼭 구하러 갈 것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나디아에게 꼭 구하러 가겠다고 한 쟝은 가고일의 기지로 몰래 잠입하다가 그랑디스 일행을 만난다. 블루워터의 행방을 묻는 그랑디스 일당에게 우선은 여기서 빠져나가자고 하며 나디아를 구할 작전을 구상한다. 나디아를 구한 일행은 가고일의 기지를 빠져나가 노틸러스라는 잠수함의 도움을 빌어 구출되었다. 선장네모에게 한눈에 반한 그랑디스. 이후로 블루워터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네모의 마음에 들 궁리만 한다. 하지만 부선장인 에렉크트라도 만만치 않은 미모를 가졌으니.....이때부터 노틸러스호에서의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네모 선장의 목적은 가고일의 네오 아틀란티스의 멸망. 이를 위해 가고일의 기지를 탐색하며 모험을 하게된다. 때로는 가고일의 잠수함을 격파하고 때로는 이를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 하지만 노틸러스호의 운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가고일의 함정에 걸려 노틸러스호는 산산조각나 깊은 바다속에 가라앉게 된다. 쟝과 나디아, 마리만이 네모선장의 덕택으로 살아남아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그랑디스 일행은 그라탱으로 적들과 싸우다 행방불명된다. 그리고 나디아는 네모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도 알게 된다.) 무인도에 표류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디아 일행. 고기를 싫어하는 등 까다로운 나디아의 취향에 맞추어 생화하려는 쟝과 마리는 이것이 귀찮기도 한데....어느 날 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감지하는 일행은 섬을 돌아보며 조사를 하던중 아브라함호에서 만났던 에어튼을 만나게 되었다. 에어튼은 이 섬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 놀란 나디아 일행은 도망치고 괴물은 쫓아온다. 하지만 나디아 일행을 본 괴물은 갑자기 멈추고 거기서 세 사람이 나오는데 이들은 그랑디스 일행이었다. 이후로 나디아들은 이 네사람과 함께 섬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후 핸슨이 그라탱을 개조해서 일행은 이 섬을 빠져나간다. 섬을 빠져나간 뒤로도 많은 모험을 하면서 드디어 옛 아틀란티스 유적이 있는 곳에 온 일행. 여기서 유적에 도착한 그 날이 나디아의 15번째생일이란걸 알게 된다. 일행들이 기뻐하는 것도 잠시 곧 가고일의 함대가 나타나 나디아에게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하며 일행을 협박한다. 어쩔수 없이 가고일에게 납치당하는 나디아를 두고 쟝은 구하러 가겠다는 말과 함께 일행과 그 곳을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면서 가고일의 공격을 받는 쟝일행. 매우 위급한 상황인데 갑자기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함선이 나타나 적을 공격한다. 그것은 바로 뉴노틸러스호로 네모선장이 이끄는 전함이었다.(2대의 노틸러스호는 원래가 잠수함이 아니라 옛 아틀란티스인들이 지구로 올때 타고온 우주전함이다.) 가고일의 레드노아와 한바탕 싸움을 치르는 네모선장. 뉴노틸러스를 당하지 못하고 우주로 도망간다. 이에 네모선장도 전함으로 뒤를 뒤쫓는데 사실 그것은 가고일의 함정이었다. 위성 루시퍼를 이용해 바벨탑의 광선으로 공격하는 가고일. 처음 것은 그럭저럭 막아냈으나 다시 두번째 공격을 준비하는 가고일앞에 절망하는 일행들. 하지만 레드노아에 침입한 그랑디스들의 활약으로 광선 공격은 중지되고 뉴노틸러스호는 레드노아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는 네모, 에렉크트라, 쟝만이 나디아를 구하기 위해 떠나게 된다. 이들 앞에 모습을 들어낸 가고일. 가고일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인간과 공존하며 지낸 죄로 네모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이어서 나타난 네로 황제와 나디아. 이둘은 가고일에게 조종당하며 네모를 공격하고 네모는 큰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뉴노틸러스호의 공격으로 이들을 제어하던 장치가 부서지고 이들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결국 네로는 동생인 나디아를 구하고 죽으며 가고일은 나디아에게 블루워터의 힘으로 아틀란티스를 다시 건국하자고 한다. 이를 거절하는 나디아에게 가고일은 쟝을 죽이고 도망친다. 쟝의 시체앞에서 슬퍼하는 나디아. 이때 네모선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블루워터와 나디아의 블루워터를 합치면 소원 한가지를 이룰수 있다고 하고 이를 이용해 나디아는 쟝을 다시 되살린다. 그리고 이들 일행을 살리기 위해 네모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나머지 모두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나디아와 쟝은 결혼하게 되며, 마리는 샌슨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된다.
등 장 인 물
Characters
Introduction
나디아 (Nadia) 성우 : 타카모리 요시노 (鷹森淑乃) (Yoshino Takamori) 1875년 5월 31일 아프리카대륙 타르테소스 왕국 태생.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블루워터를 가지고 있는 소녀. 위험에 처할때마다 나디아에게 경고를 해준다. 블루워터를 훔치려는 보석 도둑을 추적하면서 그것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여행하며 모험을 겪는다. hikali90님의 설명 : 생년월일 : 1875년 5월 31일, 신장 : 156cm, 체중 : 43kg, 신체 사이즈 : 79-58-83, 발 사이즈 : 22.5cm, 머리 : 검은 색 곧은 머리, 눈 색깔 : 에머랄드 그린 고대 아틀란티스인의 후손이자 타르테소스 왕국의 공주로서 블루워터를 가지고 있다. 블루워터는 레드 노아를 움직이는 열쇠가 된다. 나디아는 매우 민첩하며 동물들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다. 블루워터의 정통 계승자라는 이유로 가고일의 추적을 받는다.
쟝 로크 라르티그 (Jean) 성우 : 히다카 노리코 (日髙のり子) (Noriko Hidaka) 쟝은 고아로 프랑스의 항구마을 르 아블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선장으로 바다 괴물에 의해 배가 실종된 것으로 되어있다. 발명에 소질이 꽤 있다. 파리에서 그랑디스 일당에게 잡힐뻔한 나디아를 구해준것의 인연으로 함께 행동하게 된다. hikali90 님의 설명 : 프랑스 르아블에서 태어나 고모와 고모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쟝의 아버지는 가고일의 가피시에 의해 침몰당해 사망하였다. 발명을 좋아하는 예비 과학도. 파리 만국박람화에서 나디아를 처음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나디아와 함께 다니게 된다. 쟝이 만든 비행기 에뜨와르 딜라세느 시리즈는 많은 시행 착오 끝에 날게 된다. 이후 자신과 관심사가 비슷한 핸슨과 노틸러스호 안애서 연구를 계속 한다.
마리 앤 레벤브로이 (Marie) 성우 : 미즈타니 유코 (水谷優子) (Yuuko Mizutani) 4살된 고아소녀로 나디아와 쟝이 가고일 섬에서 발견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군대에 의해 피살되었다. 마리 부모님의 죽음앞에서도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았다. 원래 마리의 이름뜻은 꿈,미래,희망 등을 의미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캐릭터여서 그런지, 나디아 엔딩과 동시에 소개를 마치는 그녀의 성숙된 모습을 볼수있다. 항상 킹과 단짝을 이루며 돌아다니곤 한다. hikali90 님의 설명 : 1885년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났다. 화력발전소의 기사인 부모님과 함께 마하르섬에서 자라났다. 가고일의 습격을 받고 부모를 읺지만 나디아 일행에게 구출된 뒤 나디아와 쟝과 함께 다닌다.
킹 (King) 성우 : 사쿠라이 토시하루 (桜井敏治) (Toshiharu Sakurai) 나디아의 애완동물로 나디아가 서커스에 있을때 같이 활동하던 새끼 흰 사자이다. 블루워터에서 얻은 이상한 힘 때문에 나디아는 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 나중에는 마리와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된다.
그랑디스 (Grandis) 성우 : 타키자와 쿠미코 (滝沢久美子) (Kumiko Takizawa) 나이는 28살로 이탈리아 귀족의 딸이다. 그녀의 특징은 빨간 머리와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집안이 망하자 하인이던 핸슨, 샌슨과 함께 보석 도둑으로 나선다. hikali90 님의 설명 : 그랑디스는 이탈리아 명문 귀족의 딸으로 16살 때 곤잘레스라는 희대의 사기꾼을 사랑하다가 전 재산을 잃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운전수였던 샌슨과 정비공이었던 핸슨을 거느리고 거친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 보석을 아주 좋아하여 나디아의 블루 워터를 노리고 쫓아오다가 나중엔 오히려 한 편이 된다. 요리에 자신이 있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나디아의 인생 상담을 들어주기도 한다. 노틸러스에 승선한 후 네모 선장에게 한 눈에 반하고 만다. 덕분에 네모 선장을 좋아하는 에렉크트라와는 사이가 유난히 안좋은 편.
샌슨 (Sanson) 성우 : 호리우치 켄유 (堀内賢雄) (Kenyu Horiuchi) 27세. 그랑디스 가문이 파산하기 전에 그랑디스 집안의 운전사 였다. 27세, 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사격의 명수이기도 하다 hikali90 님의 설명 : 그랑디스 집안의 운전수로 집안이 망하자 그랑디스와 함께 다닌다. 그라탱의 운전수로서 탁월한 운전실력을 발휘한다. 힘이 매우 세서 가고일의 탱크도 맨손으로 격파할 정도이며, 사격 솜씨도 일품이다. 21화에선 공중 전함의 미사일 발사구에 총을 정확히 명중시켜 노틸러스호를 구했을 정도.
핸슨 (Hanson) 성우 : 사쿠라이 토시하루 (桜井敏治) (Toshiharu Sakurai) 27세. 그랑디스탱크(통칭 그라탱. 그랑디스만 카트린느라고 부른다)를 개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랑디스 가문이 망하기 전에 그 집안의 기계공이었다. 쟝과는 발명에 소질이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랑디스 팀의 두뇌 역할을 한다. hikali90 님의 설명 : 그랑디스 집안의 기계 수리공이었다. 그랑디스 가문이 망하자 그랑디스와 함께 그가 발명한 그라탱(그랑디스 탱크를 줄인말, 그랑디스만 이 기계를 카트린느라고 부른다)을 타고 다닌다. 에렉크트라를 짝사랑하며 훗날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 된다.
가고일 (Gargoyle) 성우 : 키요카와 모토무 (清川元夢) (Motomu Kiyokawa) 46세,본명은 네메시스 라 아르골. 아틀란티스인에 대한 선민사상으로 바벨탑의 부활을 계획한다. 13년전 네모족을 말살하고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과거 타르테소스 왕국의 수상이었으며 지금은 네오 아틀란티스의 총수이다. 그의 목적은 블루워터를 손에 넣는것고 네모와 노틸러스호를 처치하는 것이다. 물론 최대 목표는 지구를 정복하는 것. 후반부로 가서야 가면 속의 얼굴을 볼 수 있다. hikali90 님의 설명 : 네오 아틀란티스의 지도자이며 옛 타르테소스의 재상이었다. 그가 일으킨 쿠테타로 인해 타르테소스는 멸망한다. 고대 아틀란티스의 유적을 발굴해 얻은 초과학 병기로 무장한 네오 아틀란티스는 13년간 전 세계 통화량의 1/80을 장악하는데 성공해 거대한 조직으로 발돋움한다.
네모선장 (Captain Nemo) 성우 : 오오츠카 아키오 (大塚明夫) (Akio Ohtsuka) 46세,본명 엘시스 라 알워르. 타르테소스 왕국의 국왕이었다. 13년전 스스로 아틀란티스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의 손으로 왕국을 침몰시킨 전력이 있다. 네모란 뜻은 라틴어로 아무도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가고일과 네오-아틀란티스를 깨뜨려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는 노틸러스호의 선장이다. 역시 블루워터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다. 원래 아틸란티스 제국의 황제였다. 나디아 일행을 레드노아에서 탈출 시킨뒤 자신은 레드노아와 운명을 같이 한다. hikali90 님의 설명 : 노틸러스호의 선장이며 나디아와 네오 황제의 아버지이며, 전 타르테소스 국왕이었다. 가고일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13년전 가고일의 쿠테타를 막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바벨탑에서 블루워터를 빼내어 타르테소스를 멸망시킨다. 그도 블루워터를 지니고 있으며 아틀란티스인이다.
에렉크트라 (Electra) 성우 : 이노우에 키쿠코 (井上喜久子) (Kikuko Inoue) 26세,노틸러스호의 부함장. 원래 반델간트 왕국의 사람이었으나 12살때 타르테소스 왕국의 대폭팔에 의해 부모와 형제를 잃었다. 그 후 고아가 된 그녀를 네모가 거두어들여 양육한다. 나디아와 그 일행을 구출하는데 적극 동참한다. 네모선장을 좋아한다. hikali90 님의 설명 : 타도 네오 아틀란이라는 명분 아래 노틸러스호를 타고 가고일을 뒤쫓아 다닌다. 타르테소스 왕국의 주민이었으나 나라가 바벨탑의 폭발로 멸망할때 부모와 남동생을 잃는다. 후에 네모 선장에게 구조되어 그의 손에 자라난다. 이성적이고 냉정, 침착한 성격. 우연히 사실은 네모의 손에 나라가 멸망했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그에 대한 애정과 증오 사이에서 갈등한다. 취미는 독서, 약한 근시로 안경을 쓰기도 한다. 잃은 친동생을 생각해서인지 쟝을 특별히 귀여워한다.
네오황제 (Emperor Neo) 성우 : 시오자와 카네토 (塩沢兼人) (Kaneto Shiozawa) 본명은 피라시스. 네오 아틀란티스의 황제이지만, 실제로는 네모의 아들이자, 나디아의 오빠이다. 타르테소스 왕국에서 바벨탑이 대폭주를 일으켰을때 사망하였으나 가고일이 과학기술력을 이용하여 사이보그화하여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 원래의 마음을 잃지 않고 나디아와 네모선장을 구출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hikali90 님의 설명 : 네오 아틸란티스의 신비스러운 존재. 스토리 후반부에 가서 등장한다. 사실은 네모의 아들이자 나디아의 오빠. 정식 블루워터의 승계자이며 블루워터를 이용하여 레드 노아를 움직인다. 가고일이 지어준 이름은 네오 이콘 에피파네스이고 실제 본명은 피라시스 라 아르위르.
에어튼 () 성우 : 츠지타니 코지 (辻谷耕史) (Kouji Tsujitani) gksdydgns79 님의 설명 : 작품 초반 쟝과 나디아가 만나게된 인물. 아는척을 많이 하고 사기꾼 같은 기질로 인해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링컨호의 침몰로 헤어지게 되지만 후에 움직이는 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의 많은 거짓말중 진실인 것도 있었던듯 마지막에 진짜 귀족이었던게 밝혀진다. hikali90 님의 설명 : 자신을 해양 생물 학자라고 소개했지만 사실은 영국의 백작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야기 초반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후 중반 이후에 다시 등장하며, 최후의 결전때 샌슨이 그에게 마리를 잠시 부탁한다. 한때 그랑디스를 좋아해 사랑 고백을 하기도 하였다
노틸러스호 () gksdydgns79 님의 설명 : 네오아틸란티스에 대항하는 유일한 잠수함. 원래는 우주선이었다. 스페이스 티타늄이라는 놀라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갑때문에 네오아틀란티스의 주력 잠수함인 가휘쉬가 정면으로 들이받아도 이상이 없다. 엔진 또한 수소와 반수소를 대소멸시켜서 그 질량의 94%를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반영구적인 대소멸엔진을 사용하고 있어 최강의 모습을 보여준다.
뉴 토틸러스호 () gksdydgns79 님의 설명 : 네모선장이 거의 완파된 노틸러스호대신 사용하기 위해 발굴한 우주선. 다른 이름은 엑셀리온으로 올페우스형 대형축퇴로, 수소원자 대소멸기관을 사용하고 있다. 많은 무장과 바벨의 빛을 한 번 정도는 막아줄 수 있는 쉴드를 가지고 있어 최강의 전함인 레드노아와 박빙의 승부를 보여준다.
그라탱 () gksdydgns79 님의 설명 : 핸슨이 고안하여 만들어낸 만능 전차. 원명은 그랑디스 탱크이다. 그러나 정작 그랑디스 본인은 그 이름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전위와 후위에 있는 4족으로 보행을 한다던가 기구와 후위에서 나오는 프로펠러로 비행을 한다던가 후위의 터빈에 의한 수상 이동등을 할 수 있으며 전위의 2족은 사람의 손같이 사용할 수 있다. 아틸란티스인의 과학력을 배운 핸슨과 쟝에 의해 차츰 개량이 되가면서 많은 부가능력을 가지게 된다.
2007년 6월 13일 수요일
[스크랩] 안드레와 꿀벌 월리
Pixar-Adventures Of Andre And Wally B. - video powered by Metacafe
About Pixar
http://www.greenart.co.kr/board/board.asp?id=magazine_news&category=3&pageno=1&Sn=0&Ss=1&Sc=0&keyword=&rowno=101
.... 1984년 컴퓨터 그래픽 시그라프(Siggraph: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패스티벌)의 연례 행사에 픽사 팀이 모습을 나타냈다. 앨비가 구상과 감독을 하고 래스터가 동화를 그린 단편 애니메이션 [안드레와 꿀벌 월리(Andre and Wally B)]를 가져왔다. 1분 30초 분량의 이 작품은 모두의 주목을 끌었다. 기술 수준이 다른 컴퓨터 그래픽과는 차원이 달랐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다. 겨우 90초짜리 작품에서 그 정도면 대단한 성과였다. ... "iCon"에서
진섭생각
가슴 따뜻한 이야기?? ㅋㅋ 솔직히 그건 모르겠다.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약간은 초라한 모습을 픽사 최초의 공식 3D 에니메이션. 하지만 발표 년도를 보면서 생각해 보면 엄청나다. 1984년, 우리나라가 올림픽('88)을 치루기도 전이며, 당시 나는 5살의 나이였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컴퓨터라는 녀석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전세계의 1%도 안되는 시절일 것이다. 이 시절에 이걸 만들고, 컴퓨터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필요성에 컴퓨터를 정확히, 제대로 사용했던 사람들. 분명 시대를 앞서서 뛰는 사람들이다.
여기의 중심에 스티브 잡스가 서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픽사에서 스티브 잡스는 돈 많은 투자자자로써. 위에 언급된 두 명 그리고 또 한명의 천재가 픽사의 3D 에니메이션을 만들었다.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스크랩] 블랙잭폰 국내 출시 임박
그동안 출시 여부가 불투명하던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블랙잭'이 국내에도 선보이게 됐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과 KTF는 오는 6~8월경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블랙잭'을 국내 출시한다는 계획 아래 막바지 망연동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블랙잭은 올해 초 KTF가 위피(WIPI)를 탑재하지 않은 채 출시하려다 정부의 "스마트폰도 위피 탑재 의무화 대상"이라는 방침이 정해지면서 무산됐다. 이후 SK텔레콤이 블랙잭에 위피를 탑재해 출시키로 하면서 KTF도 같은 방식으로 출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KTF는 "스마트폰의 윈도모바일 운영체제에 위피를 탑재하기 위한 코드를 개발하느라 4~5개월 정도 출시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블랙잭'은 작년 11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싱귤러를 통해 출시됐으며 5개월만에 50만대가 팔리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지난 3월 열렸던 미국 CTIA전시회에서 '최고의 스마트폰'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1분기에는 미국에서 경쟁 상대인 리서치인모션(RIM)사의 '블랙베리'를 누르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에 오르기도 했다.
삼성전자 블랙잭은 국내 최초로 출시되는 쿼티(QWERTY) 자판을 탑재한 휴대폰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모아진다. 쿼티폰이란 컴퓨터 자판과 동일한 키패드를 장착한 것을 말한다. 주파수공용통신(TRS) 사업자인 KT파워텔이 역시 쿼티 방식인 블랙베리를 출시한 적은 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변이 넓지 않은 TRS와 달리 휴대폰으로는 처음 출시되는 만큼 삼성 블랙잭은 국내에서 '쿼티폰'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쿼티 자판은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사용이 편리해 해외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용자들이 이미 천지인(삼성전자)이나 나랏글(LG전자) 입력 방식에 익숙해져 있어 성공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일반 대중보다는 기업이나 스마트폰 마니아 등을 위주로 블랙잭 마케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B2B 상품으로, KTF는 20~30대 초반의 젊은 층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블랙잭은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단말기로 무선랜을 지원한다. '블랙잭'은 두께 11.8㎜의 슬림형 디자인이며 2.3인치 LCD, 130만 화소 카메라, 캠코더, MP3, 외장메모리, 블루투스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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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 2006년 6월 12일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2007년 6월 9일 토요일
[스크랩] 빌 게이츠 졸업 연설문
6 개월간의 산고끝에 탄생했다는 빌게이츠의 하바드대 졸업연설문입니다.
President Bok, former President Rudenstine, incoming President Faust, members of the Harvard Corporation and the Board of Overseers, members of the faculty, parents, and especially, the graduates:
I’ve been waiting more than 30 years to say this: “Dad, I always told you I’d come back and get my degree.”
I want to thank Harvard for this timely honor. I’ll be changing my job next year … and it will be nice to finally have a college degree on my resume.
I applaud the graduates today for taking a much more direct route to your degrees. For my part, I’m just happy that the Crimson has called me “Harvard’s most successful dropout.” I guess that makes me valedictorian of my own special class … I did the best of everyone who failed.
But I also want to be recognized as the guy who got Steve Ballmer to drop out of business school. I’m a bad influence. That’s why I was invited to speak at your graduation. If I had spoken at your orientation, fewer of you might be here today.
Harvard was just a phenomenal experience for me. Academic life was fascinating. I used to sit in on lots of classes I hadn’t even signed up for. And dorm life was terrific. I lived up at Radcliffe, in Currier House. There were always lots of people in my dorm room late at night discussing things, because everyone knew I didn’t worry about getting up in the morning. That’s how I came to be the leader of the anti-social group. We clung to each other as a way of validating our rejection of all those social people.
Radcliffe was a great place to live. There were more women up there, and most of the guys were science-math types. That combination offered me the best odds, if you know what I mean. This is where I learned the sad lesson that improving your odds doesn’t guarantee success.
One of my biggest memories of Harvard came in January 1975, when I made a call from Currier House to a company in Albuquerque that had begun mak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computers. I offered to sell them software.
I worried that they would realize I was just a student in a dorm and hang up on me. Instead they said: “We’re not quite ready, come see us in a month,” which was a good thing, because we hadn’t written the software yet. From that moment, I worked day and night on this little extra credit project that marked the end of my college education and the beginning of a remarkable journey with Microsoft.
What I remember above all about Harvard was being in the midst of so much energy and intelligence. It could be exhilarating, intimidating, sometimes even discouraging, but always challenging. It was an amazing privilege – and though I left early, I was transformed by my years at Harvard, the friendships I made, and the ideas I worked on.
But taking a serious look back … I do have one big regret.
I left Harvard with no real awareness of the awful inequities in the world – the appalling disparities of health, and wealth, and opportunity that condemn millions of people to lives of despair.
I learned a lot here at Harvard about new ideas in economics and politics. I got great exposure to the advances being made in the sciences.
But humanity’s greatest advances are not in its discoveries – but in how those discoveries are applied to reduce inequity. Whether through democracy, strong public education, quality health care, or broad economic opportunity – reducing inequity is the highest human achievement.
I left campus knowing little about the millions of young people cheated out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here in this country. And I knew nothing about the millions of people living in unspeakable poverty and disease in developing countries.
It took me decades to find out.
You graduates came to Harvard at a different time. You know more about the world’s inequities than the classes that came before. In your years here, I hope you’ve had a chance to think about how – in this age of accelerating technology – we can finally take on these inequities, and we can solve them.
Imagine, just for the sake of discussion, that you had a few hours a week and a few dollars a month to donate to a cause – and you wanted to spend that time and money where it would have the greatest impact in saving and improving lives. Where would you spend it?
For Melinda and for me, the challenge is the same: how can we do the mo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with the resources we have.
During our discussions on this question, Melinda and I read an article about the millions of children who were dying every year in poor countries from diseases that we had long ago made harmless in this country. Measles, malaria, pneumonia, hepatitis B, yellow fever. One disease I had never even heard of, rotavirus, was killing half a million kids each year – none of them in the United States.
We were shocked. We had just assumed that if millions of children were dying and they could be saved, the world would make it a priority to discover and deliver the medicines to save them. But it did not. For under a dollar, there were interventions that could save lives that just weren’t being delivered.
If you believe that every life has equal value, it’s revolting to learn that some lives are seen as worth saving and others are not. We said to ourselves: “This can’t be true. But if it is true, it deserves to be the priority of our giving.”
So we began our work in the same way anyone here would begin it. We asked: “How could the world let these children die?”
The answer is simple, and harsh. The market did not reward saving the lives of these children, and governments did not subsidize it. So the children died because their mothers and their fathers had no power in the market and no voice in the system.
But you and I have both.
We can make market forces work better for the poor if we can develop a more creative capitalism – if we can stretch the reach of market forces so that more people can make a profit, or at least make a living, serving people who are suffering from the worst inequities. We also can press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to spend taxpayer money in ways that better reflect the values of the people who pay the taxes.
If we can find approaches that meet the needs of the poor in ways that generate profits for business and votes for politicians, we will have found a sustainable way to reduce inequity in the world. This task is open-ended. It can never be finished. But a conscious effort to answer this challenge will change the world.
I am optimistic that we can do this, but I talk to skeptics who claim there is no hope. They say: “Inequity has been with us since the beginning, and will be with us till the end – because people just … don’t … care.” I completely disagree.
I believe we have more caring than we know what to do with.
All of us here in this Yard, at one time or another, have seen human tragedies that broke our hearts, and yet we did nothing – not because we didn’t care, but because we didn’t know what to do. If we had known how to help, we would have acted.
The barrier to change is not too little caring; it is too much complexity.
To turn caring into action, we need to see a problem, see a solution, and see the impact. But complexity blocks all three steps.
Even with the advent of the Internet and 24-hour news, it is still a complex enterprise to get people to truly see the problems. When an airplane crashes, officials immediately call a press conference. They promise to investigate, determine the cause, and prevent similar crashes in the future.
But if the officials were brutally honest, they would say: “Of all the people in the world who died today from preventable causes, one half of one percent of them were on this plane. We’re determined to do everything possible to solve the problem that took the lives of the one half of one percent.”
The bigger problem is not the plane crash, but the millions of preventable deaths.
We don’t read much about these deaths. The media covers what’s new – and millions of people dying is nothing new. So it stays in the background, where it’s easier to ignore. But even when we do see it or read about it, it’s difficult to keep our eyes on the problem. It’s hard to look at suffering if the situation is so complex that we don’t know how to help. And so we look away.
If we can really see a problem, which is the first step, we come to the second step: cutting through the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Finding solutions is essential if we want to make the most of our caring. If we have clear and proven answers anytime an organization or individual asks “How can I help?,” then we can get action – and we can make sure that none of the caring in the world is wasted. But complexity makes it hard to mark a path of action for everyone who cares — and that makes it hard for their caring to matter.
Cutting through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runs through four predictable stages: determine a goal, find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discover the ideal technology for that approach, and in the meantime, make the smartest application of the technology that you already have — whether it’s something sophisticated, like a drug, or something simpler, like a bednet.
The AIDS epidemic offers an example. The broad goal, of course, is to end the disease.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is prevention. The ideal technology would be a vaccine that gives lifetime immunity with a single dose. So governments, drug companies, and foundations fund vaccine research. But their work is likely to take more than a decade, so in the meantime, we have to work with what we have in hand – and the best prevention approach we have now is getting people to avoid risky behavior!.
Pursuing that goal starts the four-step cycle again. This is the pattern. The crucial thing is to never stop thinking and working – and never do what we did with malaria and tuberculosis in the 20th century – which is to surrender to complexity and quit.
The final step – after seeing the problem and finding an approach – is to measure the impact of your work and share your successes and failures so that others learn from your efforts.
You have to have the statistics, of course. You have to be able to show that a program is vaccinating millions more children. You have to be able to show a decline in the number of children dying from these diseases. This is essential not just to improve the program, but also to help draw more investment from business and government.
But if you want to inspire people to participate, you have to show more than numbers; you have to convey the human impact of the work – so people can feel what saving a life means to the families affected.
I remember going to Davos some years back and sitting on a global health panel that was discussing ways to save millions of lives. Millions! Think of the thrill of saving just one person’s life – then multiply that by millions. … Yet this was the most boring panel I’ve ever been on – ever. So boring even I couldn’t bear it.
What made that experience especially striking was that I had just come from an event where we were introducing version 13 of some piece of software, and we had people jumping and shouting with excitement. I love getting people excited about software – but why can’t we generate even more excitement for saving lives?
You can’t get people excited unless you can help them see and feel the impact. And how you do that – is a complex question.
Still, I’m optimistic. Yes, inequity has been with us forever, but the new tools we have to cut through complexity have not been with us forever. They are new – they can help us make the most of our caring – and that’s why the future can be different from the past.
The defining and ongoing innovations of this age – biotechnology, the computer, the Internet – give us a chance we’ve never had before to end extreme poverty and end death from preventable disease.
Sixty years ago, George Marshall came to this commencement and announced a plan to assist the nations of post-war Europe. He said: “I think one difficulty is that the problem is one of such enormous complexity that the very mass of facts presented to the public by press and radio make it exceedingly difficult for the man in the street to reach a clear appraisement of the situation. It is virtually impossible at this distance to grasp at all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situation.”
Thirty years after Marshall made his address, as my class graduated without me, technology was emerging that would make the world smaller, more open, more visible, less distant.
The emergence of low-cost personal computers gave rise to a powerful network that has transformed opportunities for learning and communicating.
The magical thing about this network is not just that it collapses distance and makes everyone your neighbor. It also dramatically increases the number of brilliant minds we can have working together on the same problem – and that scales up the rate of innovation to a staggering degree.
At the same time, for every person in the world who has access to this technology, five people don’t. That means many creative minds are left out of this discussion -- smart people with practical intelligence and relevant experience who don’t have the technology to hone their talents or contribute their ideas to the world.
We need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have access to this technology, because these advances are triggering a revolution in what human beings can do for one another. They are making it possible not just for national governments, but for universities, corporations, smaller organizations, and even individuals to see problems, see approaches, and measure the impact of their efforts to address the hunger, poverty, and desperation George Marshall spoke of 60 years ago.
Members of the Harvard Family: Here in the Yard is one of the great collections of intellectual talent in the world.
What for?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faculty, the alumni, the students, and the benefactors of Harvard have used their power to improve the lives of people here and around the world. But can we do more? Can Harvard dedicate its intellect to improving the lives of people who will never even hear its name?
Let me make a request of the deans and the professors – the intellectual leaders here at Harvard: As you hire new faculty, award tenure, review curriculum, and determine degree requirements, please ask yourselves:
Should our best minds be dedicated to solving our biggest problems?
Should Harvard encourage its faculty to take on the world’s worst inequities? Should Harvard students learn about the depth of global poverty … the preval!ence of world hunger … the scarcity of clean water …the girls kept out of school … the children who die from diseases we can cure?
Should the world’s most privileged people learn about the lives of the world’s least privileged?
These are not rhetorical questions – you will answer with your policies.
My mother, who was filled with pride the day I was admitted here – never stopped pressing me to do more for others. A few days before my wedding, she hosted a bridal event, at which she read aloud a letter about marriage that she had written to Melinda. My mother was very ill with cancer at the time, but she saw one more opportunity to deliver her message, and at the close of the letter she said: “From those to whom much is given, much is expected.”
When you consider what those of us here in this Yard have been given – in talent, privilege, and opportunity – there is almost no limit to what the world has a right to expect from us.
In line with the promise of this age, I want to exhort each of the graduates here to take on an issue – a complex problem, a deep inequity, and become a specialist on it. If you make it the focus of your career, that would be phenomenal. But you don’t have to do that to make an impact. For a few hours every week, you can use the growing power of the Internet to get informed, find others with the same interests, see the barriers, and find ways to cut through them.
Don’t let complexity stop you. Be activists. Take on the big inequities. It will be one of the great experiences of your lives.
You graduates are coming of age in an amazing time. As you leave Harvard, you have technology that members of my class never had. You have awareness of global inequity, which we did not have. And with that awareness, you likely also have an informed conscience that will torment you if you abandon these people whose lives you could change with very little effort. You have more than we had; you must start sooner, and carry on longer.
Knowing what you know, how could you not?
And I hope you will come back here to Harvard 30 years from now and reflect on what you have done with your talent and your energy. I hope you will judge yourselves not on your professional accomplishments alone, but also on how well you have addressed the world’s deepest inequities … on how well you treated people a world away who have nothing in common with you but their humanity.
Good luck. President Bok, former President Rudenstine, incoming President Faust, members of the Harvard Corporation and the Board of Overseers, members of the faculty, parents, and especially, the graduates:
I’ve been waiting more than 30 years to say this: “Dad, I always told you I’d come back and get my degree.”
I want to thank Harvard for this timely honor. I’ll be changing my job next year … and it will be nice to finally have a college degree on my resume.
I applaud the graduates today for taking a much more direct route to your degrees. For my part, I’m just happy that the Crimson has called me “Harvard’s most successful dropout.” I guess that makes me valedictorian of my own special class … I did the best of everyone who failed.
But I also want to be recognized as the guy who got Steve Ballmer to drop out of business school. I’m a bad influence. That’s why I was invited to speak at your graduation. If I had spoken at your orientation, fewer of you might be here today.
Harvard was just a phenomenal experience for me. Academic life was fascinating. I used to sit in on lots of classes I hadn’t even signed up for. And dorm life was terrific. I lived up at Radcliffe, in Currier House. There were always lots of people in my dorm room late at night discussing things, because everyone knew I didn’t worry about getting up in the morning. That’s how I came to be the leader of the anti-social group. We clung to each other as a way of validating our rejection of all those social people.
Radcliffe was a great place to live. There were more women up there, and most of the guys were science-math types. That combination offered me the best odds, if you know what I mean. This is where I learned the sad lesson that improving your odds doesn’t guarantee success.
One of my biggest memories of Harvard came in January 1975, when I made a call from Currier House to a company in Albuquerque that had begun mak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computers. I offered to sell them software.
I worried that they would realize I was just a student in a dorm and hang up on me. Instead they said: “We’re not quite ready, come see us in a month,” which was a good thing, because we hadn’t written the software yet. From that moment, I worked day and night on this little extra credit project that marked the end of my college education and the beginning of a remarkable journey with Microsoft.
What I remember above all about Harvard was being in the midst of so much energy and intelligence. It could be exhilarating, intimidating, sometimes even discouraging, but always challenging. It was an amazing privilege – and though I left early, I was transformed by my years at Harvard, the friendships I made, and the ideas I worked on.
But taking a serious look back … I do have one big regret.
I left Harvard with no real awareness of the awful inequities in the world – the appalling disparities of health, and wealth, and opportunity that condemn millions of people to lives of despair.
I learned a lot here at Harvard about new ideas in economics and politics. I got great exposure to the advances being made in the sciences.
But humanity’s greatest advances are not in its discoveries – but in how those discoveries are applied to reduce inequity. Whether through democracy, strong public education, quality health care, or broad economic opportunity – reducing inequity is the highest human achievement.
I left campus knowing little about the millions of young people cheated out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here in this country. And I knew nothing about the millions of people living in unspeakable poverty and disease in developing countries.
It took me decades to find out.
You graduates came to Harvard at a different time. You know more about the world’s inequities than the classes that came before. In your years here, I hope you’ve had a chance to think about how – in this age of accelerating technology – we can finally take on these inequities, and we can solve them.
Imagine, just for the sake of discussion, that you had a few hours a week and a few dollars a month to donate to a cause – and you wanted to spend that time and money where it would have the greatest impact in saving and improving lives. Where would you spend it?
For Melinda and for me, the challenge is the same: how can we do the mo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with the resources we have.
During our discussions on this question, Melinda and I read an article about the millions of children who were dying every year in poor countries from diseases that we had long ago made harmless in this country. Measles, malaria, pneumonia, hepatitis B, yellow fever. One disease I had never even heard of, rotavirus, was killing half a million kids each year – none of them in the United States.
We were shocked. We had just assumed that if millions of children were dying and they could be saved, the world would make it a priority to discover and deliver the medicines to save them. But it did not. For under a dollar, there were interventions that could save lives that just weren’t being delivered.
If you believe that every life has equal value, it’s revolting to learn that some lives are seen as worth saving and others are not. We said to ourselves: “This can’t be true. But if it is true, it deserves to be the priority of our giving.”
So we began our work in the same way anyone here would begin it. We asked: “How could the world let these children die?”
The answer is simple, and harsh. The market did not reward saving the lives of these children, and governments did not subsidize it. So the children died because their mothers and their fathers had no power in the market and no voice in the system.
But you and I have both.
We can make market forces work better for the poor if we can develop a more creative capitalism – if we can stretch the reach of market forces so that more people can make a profit, or at least make a living, serving people who are suffering from the worst inequities. We also can press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to spend taxpayer money in ways that better reflect the values of the people who pay the taxes.
If we can find approaches that meet the needs of the poor in ways that generate profits for business and votes for politicians, we will have found a sustainable way to reduce inequity in the world. This task is open-ended. It can never be finished. But a conscious effort to answer this challenge will change the world.
I am optimistic that we can do this, but I talk to skeptics who claim there is no hope. They say: “Inequity has been with us since the beginning, and will be with us till the end – because people just … don’t … care.” I completely disagree.
I believe we have more caring than we know what to do with.
All of us here in this Yard, at one time or another, have seen human tragedies that broke our hearts, and yet we did nothing – not because we didn’t care, but because we didn’t know what to do. If we had known how to help, we would have acted.
The barrier to change is not too little caring; it is too much complexity.
To turn caring into action, we need to see a problem, see a solution, and see the impact. But complexity blocks all three steps.
Even with the advent of the Internet and 24-hour news, it is still a complex enterprise to get people to truly see the problems. When an airplane crashes, officials immediately call a press conference. They promise to investigate, determine the cause, and prevent similar crashes in the future.
But if the officials were brutally honest, they would say: “Of all the people in the world who died today from preventable causes, one half of one percent of them were on this plane. We’re determined to do everything possible to solve the problem that took the lives of the one half of one percent.”
The bigger problem is not the plane crash, but the millions of preventable deaths.
We don’t read much about these deaths. The media covers what’s new – and millions of people dying is nothing new. So it stays in the background, where it’s easier to ignore. But even when we do see it or read about it, it’s difficult to keep our eyes on the problem. It’s hard to look at suffering if the situation is so complex that we don’t know how to help. And so we look away.
If we can really see a problem, which is the first step, we come to the second step: cutting through the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Finding solutions is essential if we want to make the most of our caring. If we have clear and proven answers anytime an organization or individual asks “How can I help?,” then we can get action – and we can make sure that none of the caring in the world is wasted. But complexity makes it hard to mark a path of action for everyone who cares — and that makes it hard for their caring to matter.
Cutting through complexity to find a solution runs through four predictable stages: determine a goal, find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discover the ideal technology for that approach, and in the meantime, make the smartest application of the technology that you already have — whether it’s something sophisticated, like a drug, or something simpler, like a bednet.
The AIDS epidemic offers an example. The broad goal, of course, is to end the disease. The highest-leverage approach is prevention. The ideal technology would be a vaccine that gives lifetime immunity with a single dose. So governments, drug companies, and foundations fund vaccine research. But their work is likely to take more than a decade, so in the meantime, we have to work with what we have in hand – and the best prevention approach we have now is getting people to avoid risky behavior!.
Pursuing that goal starts the four-step cycle again. This is the pattern. The crucial thing is to never stop thinking and working – and never do what we did with malaria and tuberculosis in the 20th century – which is to surrender to complexity and quit.
The final step – after seeing the problem and finding an approach – is to measure the impact of your work and share your successes and failures so that others learn from your efforts.
You have to have the statistics, of course. You have to be able to show that a program is vaccinating millions more children. You have to be able to show a decline in the number of children dying from these diseases. This is essential not just to improve the program, but also to help draw more investment from business and government.
But if you want to inspire people to participate, you have to show more than numbers; you have to convey the human impact of the work – so people can feel what saving a life means to the families affected.
I remember going to Davos some years back and sitting on a global health panel that was discussing ways to save millions of lives. Millions! Think of the thrill of saving just one person’s life – then multiply that by millions. … Yet this was the most boring panel I’ve ever been on – ever. So boring even I couldn’t bear it.
What made that experience especially striking was that I had just come from an event where we were introducing version 13 of some piece of software, and we had people jumping and shouting with excitement. I love getting people excited about software – but why can’t we generate even more excitement for saving lives?
You can’t get people excited unless you can help them see and feel the impact. And how you do that – is a complex question.
Still, I’m optimistic. Yes, inequity has been with us forever, but the new tools we have to cut through complexity have not been with us forever. They are new – they can help us make the most of our caring – and that’s why the future can be different from the past.
The defining and ongoing innovations of this age – biotechnology, the computer, the Internet – give us a chance we’ve never had before to end extreme poverty and end death from preventable disease.
Sixty years ago, George Marshall came to this commencement and announced a plan to assist the nations of post-war Europe. He said: “I think one difficulty is that the problem is one of such enormous complexity that the very mass of facts presented to the public by press and radio make it exceedingly difficult for the man in the street to reach a clear appraisement of the situation. It is virtually impossible at this distance to grasp at all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situation.”
Thirty years after Marshall made his address, as my class graduated without me, technology was emerging that would make the world smaller, more open, more visible, less distant.
The emergence of low-cost personal computers gave rise to a powerful network that has transformed opportunities for learning and communicating.
The magical thing about this network is not just that it collapses distance and makes everyone your neighbor. It also dramatically increases the number of brilliant minds we can have working together on the same problem – and that scales up the rate of innovation to a staggering degree.
At the same time, for every person in the world who has access to this technology, five people don’t. That means many creative minds are left out of this discussion -- smart people with practical intelligence and relevant experience who don’t have the technology to hone their talents or contribute their ideas to the world.
We need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have access to this technology, because these advances are triggering a revolution in what human beings can do for one another. They are making it possible not just for national governments, but for universities, corporations, smaller organizations, and even individuals to see problems, see approaches, and measure the impact of their efforts to address the hunger, poverty, and desperation George Marshall spoke of 60 years ago.
Members of the Harvard Family: Here in the Yard is one of the great collections of intellectual talent in the world.
What for?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faculty, the alumni, the students, and the benefactors of Harvard have used their power to improve the lives of people here and around the world. But can we do more? Can Harvard dedicate its intellect to improving the lives of people who will never even hear its name?
Let me make a request of the deans and the professors – the intellectual leaders here at Harvard: As you hire new faculty, award tenure, review curriculum, and determine degree requirements, please ask yourselves:
Should our best minds be dedicated to solving our biggest problems?
Should Harvard encourage its faculty to take on the world’s worst inequities? Should Harvard students learn about the depth of global poverty … the preval!ence of world hunger … the scarcity of clean water …the girls kept out of school … the children who die from diseases we can cure?
Should the world’s most privileged people learn about the lives of the world’s least privileged?
These are not rhetorical questions – you will answer with your policies.
My mother, who was filled with pride the day I was admitted here – never stopped pressing me to do more for others. A few days before my wedding, she hosted a bridal event, at which she read aloud a letter about marriage that she had written to Melinda. My mother was very ill with cancer at the time, but she saw one more opportunity to deliver her message, and at the close of the letter she said: “From those to whom much is given, much is expected.”
When you consider what those of us here in this Yard have been given – in talent, privilege, and opportunity – there is almost no limit to what the world has a right to expect from us.
In line with the promise of this age, I want to exhort each of the graduates here to take on an issue – a complex problem, a deep inequity, and become a specialist on it. If you make it the focus of your career, that would be phenomenal. But you don’t have to do that to make an impact. For a few hours every week, you can use the growing power of the Internet to get informed, find others with the same interests, see the barriers, and find ways to cut through them.
Don’t let complexity stop you. Be activists. Take on the big inequities. It will be one of the great experiences of your lives.
You graduates are coming of age in an amazing time. As you leave Harvard, you have technology that members of my class never had. You have awareness of global inequity, which we did not have. And with that awareness, you likely also have an informed conscience that will torment you if you abandon these people whose lives you could change with very little effort. You have more than we had; you must start sooner, and carry on longer.
Knowing what you know, how could you not?
And I hope you will come back here to Harvard 30 years from now and reflect on what you have done with your talent and your energy. I hope you will judge yourselves not on your professional accomplishments alone, but also on how well you have addressed the world’s deepest inequities … on how well you treated people a world away who have nothing in common with you but their humanity.
Good luck.